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말리 제국 (문단 편집) ==== 건국 ==== ||[[파일:Tombouctou.jpg|height=300]]||[[파일:67f0111a13ad73bafa383fbe9a681302.jpg|height=300]]|| ||[[팀북투]]의 전경. 말리 제국 시기의 대도시 모습이다. ||[[순디아타 케이타]]의 궁정|| 말리 제국을 세운 [[만딩카족]]은 말리의 만딩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살던 민족이었다. 본디 만딩 지역은 가나 제국의 사냥꾼들이 이주해와 개척한 지역으로, '캉가바'라는 이름으로 가나 제국 통치하에 있는 평범한 지방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가나 제국이 쇠락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캉가바 지역은 가나 제국에게 반기를 들어 독립을 선언하고 따로 떼어져 나갔으며, 이 지역은 총 12개의 소왕국들로 쪼개졌다. 이 소왕국들은 크게 2개로 분류되었는데, 북동쪽에 있는 왕국이 다스리는 영토들을 묶어 '도도구' 지방이라고 불렀으며, 남서쪽에 있는 영토들을 '크리' 지방이라고 불렀다. 이 중 크리 지방에 있는 소왕국들 중 하나였던 니아니 왕국에서 훗날 말리 제국의 개국군주가 될 순디아타 케이타가 태어나게 된다. [[순디아타 케이타]]는 니아니 왕국의 '파마(Faama)'[* 당시 만딩 지역을 다스리는 권력자들의 칭호. 보통 [[대공]]이나 [[왕]] 정도로 번역하면 된다.]인 마간 콘 파타[* 상당한 미남으로 유명했다고 한다.]와 그의 두 번째 아내 소골론 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둘의 만남 사이에도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순디아타 케이타]] 참조.] 그의 부모는 어머니의 이름인 '소골론'(Sogolon), 아버지의 앞이름인 '자타'(Djata)를 합쳐서 자식의 이름을 지었다. 당시 만딩카식으로 이름을 합쳐서 지었더니 '손드자타'(Sondjata)가 되었는데, 이 이름이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지고 또 전해지다보니 결국 그의 이름은 '순디아타'로 전해지게 되었다. 순디아타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위대한 정복자의 운명을 타고났다는 예언을 받았으며, 때문에 왕국의 모든 사람들은 그가 커서 아버지의 왕위를 물려받기를 바랐다.[* 순디아타는 7세가 될때까지 제대로 걸어다니지도 못했으나 그가 한 번 걷기 시작하자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는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인 마간 콘 파타가 일찍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첫째 아내의 아들인 단카란 투만이 순디아타를 제치고 새로운 왕이 되었다. 단카란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던 순디아타가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 것을 염려하여 순디아타와 그의 어머니를 내쫒았고, 순디아타는 여기저기를 방랑하며 고달픈 삶을 살았다. 당시 망해가는 가나 제국을 꺾고 서아프리카의 새로운 패자로 떠오른 자는 소쏘 왕국의 수마오로 국왕이었다.[* '마법사 왕'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수마오로 왕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옛 가나 제국의 이곳 저곳을 모두 정복해나갔으며, 분열되어 있었던 소왕국들은 맥을 추지 못하고 쓸려나갔다. 이들 중에는 순디아타를 쫒아낸 단카란 투만이 다스리던 니아니 왕국도 있었다. 단카란 투만은 수마오로에게 자신의 여동생을 첩으로 바칠 것을 제안하기까지 하면서 생을 연명하려 시도했으나, 수마오로는 무자비했고 니아니 왕국과 수도 니아니는 폐허가 되었다. 한편 어머니인 소골론과 함께 아프리카 곳곳을 전전하던 순디아타는 먼저 가나 제국의 옛 수도인 와가두를 찾아갔다. 그 이후에는 쇠약한 어머니를 위해 공기가 좋다고 소문한 도시 메마로 향했으며, 그 곳에서 용맹을 발휘하며 메마의 왕으로부터 메마의 후계 자리를 약속받았다. 순디아타는 이를 기반으로 점차 힘을 키워나가며 결국 '''키리나 전투'''에서 수마오로와 소쏘 왕국을 꺾는 데 성공했고, 이후 활발한 정복 활동을 통해 말리 제국의 초대 황제로 등극하며 고향인 니아니를 재건했다.[* 키리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순디아타는 그 직후 '파마들 중의 파마', 즉 '''[[만사]]'''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가 만딩카 지역의 12개 왕국들을 모두 통합하고 황제에 즉위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18세'''였다.] 순디아타는 자신이 속한 케이타 가문의 이름을 따 자신의 왕조를 '케이타 왕조'라고 불렀다. 후대의 말리 황제들은 대부분이 케이타 가문에서 배출한 황제들이었다. 어쨌든 순디아타는 즉위 직후부터 활발한 정복 활동을 통해 빠른 속도로 서진했고, 오늘날의 [[감비아]], [[세네갈]], [[기니비사우]] 지역까지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그가 거느린 장수들 중 제일이라 불렸던 티라마칸 트라오레 장군은 마지막까지 소쏘 왕국의 편에 서서 순디아타에게 대항했던 졸로프와 바이누크인들을 꺾고 옛 가나 제국의 전성기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는 공로를 세우면서 이름을 날렸다. 순디아타 황제와 트라오레 장군의 엄청난 정복 활동 덕분에 순디아타 케이타 황제 재위기의 말리 제국은 이미 [[만딩카족]]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수많은 부족들을 아우르는 거대한 대제국으로 발돋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